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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엄마가 치매야/ 이재학

홍영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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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0.2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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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엄마가 치매야/이재학

18
치매로
정신이 없어도
아들이 들어오지 않으면
여-전-히
밤을
지키며
아들을 기다리는
울 엄마
 

엄마가 치매야.jpg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기억력이 쇠퇴해지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뚜렷했던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더구나 생각이 날 듯 말 듯한 지난 일들은 기억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좋지 않은 감정의 강렬한 흔적이나 뇌 속에 간직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은 평생 지워지지 않고 기억 속에 남는다. 그래서 망각의 기술이 필요하다. 지난 일의 개인적 경험이나 특히 부정적인 경험이 머릿속에 남겨져 있는 이러한 기억의 흔적을 생리학에서는 엔그램(engram)이라 한다. 한 마디로 ‘기억의 세포’, 또는 ‘기억의 흔적’이다.
시인의 어머니는 흔히 우리가 일컫는 노인성 질환의 대표 격인‘치매’증상이 있으시다. 치매의 질환은 노인뿐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흔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시인 보들레르의 <벌거벗은 내 마음>의 글에서 “오늘 내게 이상한 병적 징후가 나타났는데, 내 몸 위로 치매의 날갯짓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나이 41살 때이다.
치매를 앓은 어머니는 당연히 기억력이 오락가락하기에 때론 헛소리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하기도 한다. ―물론 증상의 정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어머니란 존재는 자식 앞에서는 치매를 뛰어넘는다. 심리학에서 말한 기억의 저장(engram)에는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치매와 상관없이 이미 몸이 반응하고 기억하고 있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들지 않고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애타는 심정, 몇 날 며칠의 밤도 지새울 수 있는 어머니는 여자이기 이전에 이미 엄마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38
우리 엄마
아픈 이야기 하면
하나 같이 왜 요양병원에
모시지 않느냐고 묻는……
나는 또 그 소리가
듣기 싫다
  
이재학 표지신문 융신문 여행.jpg
엄마가 치매야/이재학(미디어저널)

노인들이 두려워하는 치매, 뇌혈관 질환, 중풍, 우울증, 만성 심부전증 등등은 나이 듦에서 오는 질병들이라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두려운 것은 질병으로 인한 가족 간의 불화, 더 나아가 고립, 즉 인간적인 삶의 형식과 존엄성이 박탈당하는 수용소 같은 격리된 시설로 보내지거나 어쩔 수 없이 자발적으로 가는 경우이다. 물론 그러한 시설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살아 있지만 죽어있고 숨을 쉬고 있지만 숨을 쉴 수 없는 상태. 한 마디로 생물학적 생명만 살아있을 뿐 정신적 조난자가 되어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복낙원에서 실낙원으로 옮겨진 삶. 바로 아감벤이 말한 호모 사케르(homo sacre)이다. 어쩜 우리는 모두 잠재적 호모 사케르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알기에 주변인들의 권유에도 요양원에 보내지 않는다. 어쩜 엄마 속으로 들어가 엄마의 눈과 감각으로 이 현실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부분 요양원에 보내지고 있는 요즘에도 차마 보낼 수 없는 것이다. 더불어 골수를 확 깨부수고 들어오는 ‘효’라는 깨우침의 정성 때문이기도 하다.
 
 
 
60
아들이 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맛있게 먹는
엄마
나도 어렸을 적
엄마가 주는 것은
저렇게 맛있게
먹었을까?
 
‘사자소학’을 보면 “雪裏求筍(설리구순)은 孟宗之孝(맹종지효)라는 구절이 있다. 눈 속에서 죽순을 구한 것은 맹종의 효도이고, 剖冰得鯉(부빙득리)는 王祥之孝(왕상지효), 얼음을 깨서 잉어를 잡은 것은 왕상의 효도이다“ 얼마나 지극한 효성인가. 혹한의 눈 속에서 죽순을 구하고 얼음을 깨고 잉어를 구해 어머니를 봉양한다는 것. 엄마의 등에 업힌 뜨뜻한 등줄기에서, 심한 감기도 바로 낫게 하는 엄마의 품에서 혈연의 정을 느꼈던 시인은 아픈 엄마를 위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천리 길 마다 않고 구해서 드렸으리라. 그걸 받아 드시는 엄마에게 맛과 영양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저‘효도’라는 최고의 고단백질 음식 앞에.
 
84
엄마가 떠나시고
미안하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용서해달라는 말도
한낱 부질없는 메아리가
되었습니다.
 
“樹欲靜而風不止하고 子欲養而親不待니라“. 나무가 고요 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아니하고, 자식이 봉양코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는다《한시외전(韓詩外傳)》.
바람이 멈추지 않으니 나뭇가지는 흔들릴 것이고 부모님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나날이 늙어가며 기다려 주지 않을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돌아가신 뒤에는 그 어떤 ‘미안’,‘사랑’,‘용서’등의 말과 표현도 부질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송강 정철의 훈민가를 떠 올려보자.
'어버이 살아 계실 제 섬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아 어찌하리
평생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KakaoTalk_20191020_224949233신문10월.jpg
홍영수 시인

치매를 앓다가 엄마가 돌아가셨다. 죽음이 배신자처럼 온 것이다. 누구든 한 번 왔다 한 번 가는 것이지만 하늘이 무너지고 천지가 고통으로 다가오는 천붕지통(天崩之痛) 의 아픔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누구의 말처럼 “죽음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고 생각하자. 孔子도 “삶도 아직 모르는데 하물며 죽음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未知生焉知死)”라고 하지 않았던가. 잊으면서 기억을 해야 한다. <父母恩重經>의 “어머니의 가슴을 잠자리로 하고, 어머니의 무릎을 놀이터로 하고, 어머니의 젖을 음식으로 하고, 어머니의 정을 생명으로 삼는다.”는 구절을 떠 올리면서 눈을 감아본다.    


새벽이다. 창문 너머로 동살 잡힌 교회의 첨탑이 보인다. 시인에게 어머니는 지금도 저 멀리 울려 퍼지는 한 울림의 종소리일 것이다. 시인의 ‘수상록’을 읽고 감상하면서 작고하신 필자의 어머니에 대한 파편화 된 기억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새롭게 반추해 본다. 시를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하지 말자. 그냥 느끼자.

이재학 수상록 <엄마가 치매야>, 2019, 미디어저널.

 글/ 시인 홍영수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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