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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잠입/손영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 1주년 기념기획/ 홍영수 시인의 부천의 문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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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1.1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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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학창의 도시 지정 1주년을 맞아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독자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아름다운 잠입/손영

 

  

빗방울이 강물 속으로 들어간다

망설임 없이

 

강물은

싫은 기색 없이 비를 받아들인다

 

빗물이 스미는 소리

강물은 한 가족으로 비를 맞이한다

물과 물이 합쳐지는 순간 나타나는 둥근 파문

빗줄기는 소리로 계약서를 쓴다

수많은 물도장을 찍는다

이것은 오래 전 둘만의 약속

한 번도 파기한 적 없는

물도장 계약서가 사방에 낭자하다

 

청아한 톤이 강물에 찍히는 소리

수많은 비의 음성

 

강물은 떨어지는 목소리에 귀를 세운다

빗소리를 녹취하고 쏟아지는 하늘을 저장중이다.

 

 

시집 <공손한 풀잎들>

 

 

빗방울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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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속 수분의 입자들이 떠돌다 뭉쳐 지구의 중력에 의해 빗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추락에서 때론 우리의 슬픔도 느낀다. 이러한 것은 시인에게는 과학적 호기심이 아니고, 가뭄의 단비 같은 고마운 존재로 다가오기보다는 수직으로 때론 바람에 실려 사선으로 내리는 빗소리에서 시의 영감과 신의 호흡과 음성을 듣기도 하고 비 그친 뒤의 무지개를 기약하기도 한다.

 

빗방울은 하늘에서 태어나 지구의 표면에서 죽는다. 죽을 때는 최고의 속력으로 미친 듯 창공을 내리 가르며 죽어간다. 정작 본인은 그 이유를 모르면서. 슬픈 인생이다. 한 번 뛰어내리면 절대로 그곳을 올라갈 수 없는 운명이다. 추락만 안고 태어난 슬픈 삶이기에 대지와 또는 강물을 만나면 비로소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서 만나는 대상과 한 몸이 되어 시냇물, 강물, 오대양으로 흐르다 다시금 증발해서 똑같은 순환의 반복적인 삶을 산다.

 

그러나 시인은 유한한 삶 앞에 무한의 실마리를 찾기보다는 순환적인 자연의 섭리를 과감히 접고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빗소리를 녹취하고 저장한다.

 

저 먼 낯선 곳에서 뛰어내린 비를 이유 불문하고 가족으로 맞이하는 강물의 포용력, 수직의 허공에서 거침없이 착지하여 온전한 강물의 식구가 되는 모습에서 시를 창작하는 시인은 창조는 대립이 아니라 조화와 융합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강이 빗물을 배불리 담아 둘이 하나 되어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에서 한류와 난류가 만나 껴안고 악수하는 곳으로 독자를 데리고 간다.

 

물과 물이 하나 되어 경계를 지우며 일으키는 둥근 파문은 한 울림의 맥놀이가 되어 가슴 저민다. 시가 아니면 건 널 수 없는 강을 시인은 건너고 있다. 머리가 아닌 웅숭깊은 가슴으로.

 

이때 보이는 또 하나, 강물은 빗방울의 雅號인 소리로 白文陽刻으로 낙관을 찍는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아니 世世年年 변함없이. 빛과 어둠이 하나이듯 대지의 강물과 하늘의 빗물이 하나가 되기 위해 안고 안긴다. 不一不二이기에 강물은 싫어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

 

청산리 벽계수의 물도 쉬이 감을 자랑하지 않고 산을 만나면 돌아가고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되어 떨어져 인연 따라 흘러간다. 그렇기에 강물은 비를 안고 흐른다. 시인은 하늘의 빗방울과 대지의 강물을 대립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나는 너를 안고 너는 나를 베는’, 자아주의自我主義을 벗어나 자타불이自他不二가 되어 조화로운 상생으로 자연의 현묘한 품에 안기는 모습을 읽고 있다.

 

맑고 우아한 빗방울 소리가 강의 옆구리를 찌르고 귀에 소곤거리며 하늘과 대지와의 벽을 허물며 하나가 됨을 하늘은 녹음 하는 중이다. 독자 또한 임장감을 느낀다.

 

한국의 문화는 벽을 쌓고 높이는 문화가 아니다, 벽을 허물고 낮추는 문화이다. 그러한 문화에 익숙한 시인은 빗물과 강물이 하나가 되어가며 하늘과 대지의 벽을 허무는 순간을 냉철한 시인은 눈으로 매섭게 묘사하고 있다. 빗방울이 쓰는 마지막 시는 경계 지움이다. 하늘을 우러러보아 천문을 읽고 굽어보아 지리를 살피는 仰觀俯察하는 시인의 글두름손이 돋보인다.

 

서양의 로고스 중심적인 線彫적 양태를 벗어던지고 한국적인 순환적 구조로 전위성을 창조해 나가야 함을 은근히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시이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표현하는 자의 무게만큼 들리고 다가온다.

 

立冬이 지났다. 조석으로 싸늘한 기온이 감도는데 창밖에는 느닷없이 천둥 번개 소리에 때마침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흐른다. 이때다 싶어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찾는다.

 

    글-홍영수 시인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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