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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회(夜會)- 2회

김찬숙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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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6.1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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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그 사이 무르팍을 넘어 허벅지까지 차올라 지칠 대로 지친 걸음을 더는 옮겨 디딜 수 없었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면 내리붓는 눈발이 봄이면 분홍빛 도화로 장관이었던 아랫마을 안골 복숭아나무들도, 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도, 들판도, 또 암수 두 큰 소나무로서 멀리서도 쉽게 식별되는 서낭당마저도 뒤덮어 온통 천지를 구분할 수 없게 했다. 땅꾼으로서 뱀을 찾아 한평생을 수없이 오르내려 이 일대와 저 소래산이라면 그 구석구석을 마치 손바닥 펴보듯이 훤히 읽는 황노인으로서도 그 동안 쌓인 눈과, 또 내리붓는 눈발 속에서는 등성이와 골짜기의 구분마저도 어렵게 했다. 그래서 이제 황노인은 그저 어림짐작만으로 큰바위쪽 구릉을 향해 등성이를 타 오르고 있었다. 이놈! 이 못된 놈! 수없이 낭떠러지에 곤두박질치기도 하고 잡목 숲에 발목이 잡혀 태기질치기도 하며, 또 손등과 얼굴을 오리목과 싸리나무 잔가지에 찔리고 찢기고 할퀴이면서 황노인은 한사코 등성이를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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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숙 소설가

 소는-송아지는 첫눈에도 한낱 짐승이 아닌 영물로 비쳤었다. 그러니까 황노인에 있어 소는 어쩌면 아내 우심이 자체인 셈이 되기도 하였고, 우심이 떠난 그날 밤 이후 내내 빈자리를 채워준 동무이기도 했다. 그 큰 눈알을 껌벅 껌벅 감았다 뜨기만 해도 노인은 이미 그 심중을 읽을 수 있었고, 소의 눈에도 저의 마음이 다 읽혀지는 듯했다. 그리하여 아내 우심의 떠나는 뒷모습을 그저 둘이 눈알만 뒹굴뒹굴 굴리며 같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에게 소는 이미 오래전 야간도주해 버린 어머니인 셈이 되기도 했으며, 겨우 다섯 살 때 백사에 물려 죽었다는 아버지인 셈이 되기도 했다. 황노인을 혼자 이 기슭에 내팽개쳐 둔 채 곁을 하나씩 하나씩 떠나버린 정붙인 사람들의 자리- 그 몫으로 대신 보내어진 듯만 싶은 짐승. 그와 함께 한 날들이, 떠나보낸 이들과 지냈던 시간 이상으로 많았지 않았나 싶었다.

황노인에 있어 온전히 황소만이 자기 몫이 되어버린 때는 죽은 아내 우심의 굿판을 두 번째로 구경하던 날이었다. 두 번째라고는 하지만, 우심의 첫 굿판 구경이 그보다 거의 십여 년 가까이나 거슬러 올라야 하는, 혼례를 치르던 해의 일이니 황노인에게는 첫 구경이나 마찬가지인 셈이 아니던가. 어찌된 영문인지 아내 우심이 황노인에게만은 자기 굿의 구경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던 것인데, 마을 사람들 말로는 그것이 아내 우심이 저 자신과 박수 공씨 간의 그렇고 그런 망측한 관계를 절대 꼬리 밟히지 않으려는 계산속이라 했다. 사실 우심이 인근 마을이나 멀리 타지로 며칠씩 혹은 어떤 경우에는 한두 달 간씩 집을 비우고 굿하러 떠날 때면 으레 박수 공씨와는 동행이었고, 더구나 그곳에서 그들은 침식과 기거를 언제나 함께 해온다고들 했다. 그리하여 인근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들을 부부 사이로 알고 있다지 않던가. 그러고 보면 또, 우심이 있을 적에 황노인은 한 번도 우심을 흡족히 안아보지 못했다. 어쩌다 합방을 허락하는 날 밤이면 우심의 목욕이 좀처럼 끝나지 않아 노인을 안절부절못케 했고, 합궁 때는 합궁 때대로 장수 도깨비 신주를 모신 방이라 몸을 흩트려서는 안 된다며 몰아세우곤 하지 않았던가.

우심의 두 번째 굿판, 건너 마을 한 씨 집안 과년했던 딸이 신변을 비관해 물에 빠져 죽고, 그 죽음을 달래는 씻김굿판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황노인의 구경을 허락한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황노인으로서는 그것이 이날 이때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우심의 그 두 번째 굿판이 도저히 잊히지 않는 것은 그것이 우심이와 헤어진 마지막 대목이었다는 점도 작용했지만, 그 굿판 자체에서 느꼈던 순전한 어떤 감동이 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박수 공씨에 대한 가슴 깊이 타오르는 질투심이 극에 달하면서 느꼈던 일종의 흥분 상태가 지속되어 그 굿판의 광경이 이날 이때까지 뇌리를 벗어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왜 그때 우심의 이상행동에 대해 한번쯤 의심해 보지 않았던가. 송아지 고삐를 건네받고 속으로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던 자신이 원망스럽고 부끄러웠다. 황노인의 마음에 늘 박혀있던 죄책감은 우심이 원혼이 되어 눈물 흘리며 타령조의 사설을 할 때, 애써 그 눈빛을 외면했던 것이었다. 그 눈빛을 예감해 알아차렸더라면, 혹은 그때의 그 부정스러운 생각만 아니었던들 우심을 죽지 않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이 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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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우심은 그때 첫 애기를 배었던 모양이었다. 한씨네 과년한 딸이 신병을 비관해 물에 빠져 목숨을 끊는 장면을 굿으로 재연할 때, 우심의 젖은 옷 밖으로 드러나는 그 풍만한 육체의 놀림에 황노인은 오랫동안 야릇한 흥분에 휩싸여 넋을 빼앗겼다. 구경 온 마을 사람들이 굿거리장단 따라 엮어가는 우심의 청승스런 사설에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에도, 서슬 퍼런 작두에 몸을 실어 천을 찢으며 내달음 칠 때에도 그 화려한 몸놀림에 취해 그저 야릇한 흥분과 열기 속에서 망연자실해 있어야 하지 않았던가. 굿판이 끝나갈 무렵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우심이 송아지 고삐를 자신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건네 줄 때에도, 그저 그 어떤 알 수 없는 질투와 송아지를 얻은 뿌듯함에 이별다운 이별 또한 치르지 못했었다.

    

- 다음회에 계속

 

김찬숙 

소설가. 부천신인문학상 소설부문 당선.

 현재 다니엘종합병원 의무원장.

chankk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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