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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이재학 에세이 (6) 마라톤, 멀고 먼 길(마라톤 이야기3)
    가랑비의 힘은 무서웠다. 비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비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가랑비가 속옷까지 적시고 온 몸에 스며들어 영향을 미치듯이 지속되는 종선의 마라톤 타령은 힘을 가지고 나를 압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저녁에 종선의 전화가 없으면 나는 전화기 앞에서 전화를 기다렸고, 나중에는 전화를 한번 걸어볼까 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했다. 그것은 오직 마라톤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마라톤을 하는 것은 두려웠지만 마라톤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재미가 있었다.  나는 마라톤이란 어마어마한 단어의 힘에 짓눌려서 기를 펴지 못한 채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종선의 한마디가 나를 결정적으로 자극했다. 종선이 말했다. “재학이형 우리 산에 가면 항상 앞장서서 가는 사람이 형 아니야. 산에 가면 늘 형의 엉덩이만 보고 따라가던 나도 마라톤을 했는데 형이 왜 못해?” “야 산에 가는 것 하고 마라톤하고 갔냐. 산이야 올라가면서 경치도 감상하고, 힘들면 쉬기도 하고, 아무리 많이 걸어도 몇 킬로 밖에 안 되지만 마라톤 하면 42km를 걷는 것도 아니고 쉬지 않고 달리는 건데 마라톤을 산하고 비교하면 안 되지.” “누가 처음부터 42km를 뛰나. 처음에는 10km도 달리고, 다음에는 21km도 달리고 하다 충분히 연습이 되고 자신감이 생기면 42km풀코스마라톤을 하는 거지.”   나는 종선의 10km, 21km라는 말에 귀가 번쩍 열렸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마라톤은 오직 42km풀코스마라톤만 있는지 알고 있었다. 종선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10km라면 이십 오리(4km 십리)에 불과하니 한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저녁에 시간이 나거나 주말이면 전에는 하지 않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괜히 아무런 생각 없이 동네를 걷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의 행동을 운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만의 마라톤의 시작이었다.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감이 생긴 나는 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5km쯤 떨어진 작은집을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군에서 제대한 이후 산에 갈 때 이외에는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본 적이 없었고, 언감생심 작은집을 걸어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몇 날 몇 칠을 벼르다 막상 작은집을 향해 출발했지만 십리가 좀 더 되는 그 길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멀었다. 좀 가다 힘들면 쉬고, 무슨 볼거리라도 있으면 구경을 하면서 쉬엄쉬엄 작은집을 향해 갔다. 어떤 계획을 갖고 작은집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단지 걸어서 작은집을 가는 게 목표였으므로 작은집을 걸어간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오히려 반전은 작은집에 도착해서 발생했다. 집에서부터 걸어서 왔다는 말에 작은아버지와 작은엄마는 깜짝 놀라시며 쓸데없이 왜 걸어왔냐면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힘들지 않았냐고 몇 번을 묻고 다음부터는 걸어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걸어간 내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작은집을 걸어가는 첫걸음을 뛴 다음에는 가끔씩 작은집으로 걸어가거나 반대로 작은집에서 집으로 걸어왔다.  작은집으로 걷기가 반복되면서 작은집으로 걸어가는 방법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몇 번 작은집으로 걷기를 한 다음에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한 번도 안 쉬고 작은집까지 걸어가기였다. 한 번도 안 쉬고 작은집까지 걷기가 가능해지자 단계를 높여서 일정한 속도로 작은집까지 걸어갔다. 그 다음에는 또 단계를 높여서 좀 더 빠르게 걸어가기를 시도했다. 여기까지 가능해지자 은근히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뛰고 싶다는 마음이 온몸으로 빠르게 펴져나갔다. 그러나 마라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에세이] 1부 - 마라톤을 시작하다      1-손목을 자르고 싶었다      2-미쳤구나 미쳤어      3-마라톤, 멀고 먼 길(마라톤 이야기3)      4-뛰고 싶어 하는 마음      5-여우고개를 올라가서 본 것 이재학 작가 마라토너,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전), 복사골문학회, 부천수필, 부천시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소사천』
    • 예술/창작
    • 문학
    2026-04-10
  • 이재학 칼럼 38. 봄이 진짜 봄인가
    어느덧 봄이 왔다. 이번 겨울은 무심코 밖에 방치한 음료수가 몇 년 만에 엄습한 추위에 얼어 터지고, 추위에 대비하여 숨을 쉴 수 있도록 변기의 수도꼭지를 열어 놓았음에도 실외의 화장실은 얼어서 사용할 수 없었다. 삼한사온의 나라이니 곧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싶었지만 추위가 한없이 계속되어 애를 태우게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겨울이었다. 추위 때문일까? 남도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예년에 비해 몇 배는 더 반가웠다.  봄이 어떤 계절인가?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중 봄은 희망을 품게 만드는 계절이다. ‘엄마가 반죽한 밀가루가 부풀었다/ 밤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밀가루는/ 아침이면 키가 자랐다’ 필자의 시 ‘봄’의 일부다. 봄은 밤에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자고나면 달라지고, 또 자고나면 달라진다. 아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듯이 봄은 하루하루가 빠르게 변한다. 봄은 생명이라곤 잉태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무튀튀한 대지에 푸릇푸릇 새싹이 돋고 푸른 밭으로 변신하게 만든다. 눈을 옴팡 뒤집어쓰고서도 꽃을 피우는 봄의 꽃들을 보라! 어디에 생명의 정기를 숨겨두었다 봄이면 엄마가 아버지가 생일 선물을 주듯이 우리에게 건네는지 신비하다. 드디어 남도에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렸으니 우리를 힘내게 만들어줄 봄꽃의 향연이 줄줄이 펼쳐질 것이다. 매화에 이어 산수유 벚꽃 개나리 목련 진달래에 철쭉까지 KTX를 타고 달리는 봄의 향연을 상상만 해도 기쁘다. 이 기운으로 겨울동안 쌓였던 피곤과 우울함과 절망을 깨끗이 씻어내면 좋겠다. 나는 지난봄 매화의 향기를 기억하고 있다. 목련의 고운 자태도 기억하고 있다. 벚꽃의 화사함도 기억하고 있다. 진달래의 선홍빛 추억도 기억하고 있다. 개나리의 희망도 기억하고 있다. 봄의 꽃들이 뭉게구름처럼 무리지어 피듯이 봄은 결코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작은 쌀알을 모아 놓은 것처럼 봄의 꽃들은 작지만 함께하니 외롭지 않다. 은하수처럼 큰 무리를 만드는 봄을 즐기면서 우리는 여름(세상)으로 달려갈 힘을 얻는다. 나 혼자가 아닌 함께 라서 행복한 봄이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어느덧 쑥들이 앞 다투어 돋아난다.  세상은 봄으로 달려가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다. 아직 겨울옷을 입고 있다. 꽃샘추위 때문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곰곰이 생각해도 답을 찾지 못했고,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아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봄과 함께하지 못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되었다. 어린이집에 등교하는 아이들이 통학버스를 기다리는 정거장의 풍경을 보게 되었다. 통학버스 정거장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은 인사만 할 뿐이었다. 어른들이 대화를 나누거나 아이들끼리 반갑게 장난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한 방향을 바라본 채 조용히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늘 그런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말 없는 그 공간이 무척 낯설게 보였다. 통학버스 정거장의 고독을 확인하고는 과거의 우리들은 어땠나를 떠올려보았다. 어른은 어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쉼 없이 떠들고 장난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순간 겨울이 겨울로 끝나지 않고 봄여름가을로 이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래밭의 모래는 외롭다. 모래는 서로의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래는 비가 오면 빗물에 쓸려가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날라 간다. 봄이 되었어도 ‘이 봄이 진짜 봄인가’ 의심하는 나는 아직도 겨울옷을 벗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재학 작가 (20260314) 마라토너,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전), 복사골문학회, 부천수필, 부천시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소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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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25
  • 이재학 에세이(5) 미쳤구나 미쳤어(마라톤이야기2)
    1999년 10월 어느 날 저녁 전화가 왔다. 종선이었다. 종선은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흥얼거리며 들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재학이형 지금 뭐해?” “뭐하긴 저녁밥 잘 먹고 텔레비전 보고 있지. 종선이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뭐하고 있어?” 히히히 웃으며 종선이 말했다. “뭐하긴 형하고 전화하고 있지. 아! 농담이고. 재학이형 나 일요일 날 뭐했는지 알아?” “종선이가 뭐했는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가만 모태 신앙이니 일요일에 교회 갔겠지. 아냐?” 종선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주 진지하게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나 춘천에 갔다 왔어.” 나는 종선의 춘천을 갔다 왔다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 “춘천에서 뭘 했는데. 웬 춘천?” “형 지난 일요일에 춘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나는 잠시 지난 일요일 춘천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춘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모르겠는데. 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자꾸 뜸을 들이는 거야. 속 시원하게 빨리 말해봐.” “조선일보춘천마라톤대회가 있었거든.” “마라톤이 왜? 갑자기 웬 마라톤이야?” “형 알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거든. 풀코스마라톤을 뛴 인간하고, 풀코스마라톤을 뛰지 않은 인간이 있다는 말이지. 물론 나는 풀코스마라톤을 뛴 인간에 속하지.” 종선의 말에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그래서 마라톤을 했다고 자랑하려고 전화했구나.” 내 말에 종선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니. 마라톤 했다고 자랑하려고 전화한 게 아니고, 재학이형도 마라톤 하라고 전화했어.”   나는 종선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종선이 이 친구가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싶었다. 본인이야 어떻게 마라톤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마라톤을 하자고 권하려고 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마라톤이라니! 그때까지 나는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 마라톤을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또 그런 사람을 본적도 없었다. 나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비명처럼 외마디를 던졌다. “미쳤어, 미쳤구나.” 종선은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히 알고 있었다는 듯이 가볍게 말했다. “미치긴 뭐가 미쳐. 그럼 나도 미친놈이게. 안 그래.” “야!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소리야. 마라톤 하라는 쓸데없는 소리하려면 전화 끊어.” “역정만 내지 말고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봐. 나도 마라톤을 했는데 형이 왜 못해……” 종선은 내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지는 상관없이 마라톤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야! 듣기 싫으니까 이제 그만 전화 끊어.”   나는 전화를 끊었지만 종선의 목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 ‘세상에는 풀코스마라톤을 뛴 인간과 풀코스마라톤을 뛰지 않은 인간이 있다. 마라톤은 특별한 사람만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 다음날부터 저녁이면 종선은 전화를 걸어 함께 마라톤을 하자고 유혹하기 시작했다. 종선이 설파하는 마라톤 유용론은 끝이 없었다. 어느덧 저녁이면 나는 종선의 전화를 은근히 기다리게 되었다. 나는 종선의 끈질긴 마라톤 공략에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을 하다가도 불현 듯 ‘나도 한번 마라톤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재학 작가 마라토너,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전), 복사골문학회, 부천수필, 부천시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소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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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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