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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학칼럼 34 우거지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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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5.12.2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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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가고 겨울이 시작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사람들은 김장을 한다. 물가가 올랐다고 거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겨울이 되면 주부들이 김장을 하듯이 뼈다귀해장국을 운영하는 필자도 2026년 봄여름에 사용할 우거지를 준비한다. 


김장철에 우거지를 대량으로 준비하는 것은 일 년 중 가장 좋은 양질의 배추 잎을 대량으로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이 시작될 때면 야채가게마다 배추가 산처럼 쌓이고 집집마다 김장을 한다. 그만큼 우거지로 만들 수 있는 배추 잎이 넘쳐나는 시기이다. 김장철을 잘 활용하면 꽤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우거지를 거의 무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우거지는 주로 배추 잎으로 만든다. 우거지를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서는 배추 잎을 살짝 삶아 물기를 빼고 일정분량씩 소분하여 냉동 보관한다. 그러면 일 년 내내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면 된다. 김장철이면 배추 농사를 짓는 농부들도 바쁘고, 야채가게의 상인들도 바쁘고, 주부들도 바쁘지만 우거지를 많이 사용하는 식당들도 바쁘다. 우거지를 삶기 때문이다.


필자는 뼈다귀해장국(마라톤뼈다귀해장국)을 23년 째 운영하고 있다. 23년 째 매년 김장철이면 주부들이 김장을 하듯이 우거지 삶기를 했다는 뜻이다. 우선 배추 잎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주변의 지인들이 배추 잎을 갖다 주지만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절임배추를 판매하는 야채가게에서 대량으로 공급받는 것이다. 김장철이 시작되어 절임배추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야채가게는 순식간에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바뀐다. 짧은 기간에 밤낮없이 집중적으로 배추절임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배추를 다듬을 때 우거지가 되는 배추 잎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버려지는 배추 잎을 우거지로 만들 배추 잎과 쓰레기로 버려질 것을 구분하고, 우거지로 만들어질 배추 잎은 다발로 묶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식당으로 이동한 배추 잎이 삶아져서 우거지로 변신한다.


23년 동안 야채가게의 배추 잎을 공급받으면서 김장의 풍속(風俗)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23년 전에는 우거지로 만들어야 할 배추 잎이 차고 넘쳐서 냉동고를 금방 우거지로 채울 수 있었고, 야채가게는 배추 잎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도 남아서 김장쓰레기로 배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냉동고를 빛과 같이 빠른 속도로 우거지를 채우는 것은 단지 몇 년에 불과했다. 김치의 소비가 줄어들면서 해가 갈수록 냉동고를 채우는 시간도 늘어만 갔다. 근래에 와서는 냉동고를 다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지만 묵묵히 기다리고 있으면 끝내 냉동고가 우거지로 채워졌다. 필자는 올해도 기다리고 있으면 작년과 마찬가지로 냉동고를 우거지로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칼럼을 쓰는(12월 23일 화요일) 순간까지 냉동고를 반밖에 채우지 못했다. 23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냉동고를 채우기 위하여 필자는 야채가게에 우거지단(배추 잎 묶음)을 주문했다. 올 한 해 한 번의 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을 곰곰이 되짚어보면. 김장철이면 김장쓰레기 대책을 세우곤 했는데 동네에서 김장쓰레기를 본적도 별로 없다. 김장철이지만 김장을 했다는 말을 주변에서 별로 듣지 못했다. 김장철이 되었지만 사실 김장을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언론에서도 김장을 전처럼 크게 다루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도 전과 같지 않다. 결국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한 탓이다. 이러다 김장이란 단어마저 사어(死語)가 될까 두렵다. 

(20251223화 이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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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티저널 편집부 기자 bcj2016@naver.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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