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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재학 에세이 (6) 마라톤, 멀고 먼 길(마라톤 이야기3)
가랑비의 힘은 무서웠다. 비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비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가랑비가 속옷까지 적시고 온 몸에 스며들어 영향을 미치듯이 지속되는 종선의 마라톤 타령은 힘을 가지고 나를 압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저녁에 종선의 전화가 없으면 나는 전화기 앞에서 전화를 기다렸고, 나중에는 전화를 한번 걸어볼까 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했다. 그것은 오직 마라톤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마라톤을 하는 것은 두려웠지만 마라톤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재미가 있었다. 나는 마라톤이란 어마어마한 단어의 힘에 짓눌려서 기를 펴지 못한 채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종선의 한마디가 나를 결정적으로 자극했다. 종선이 말했다. “재학이형 우리 산에 가면 항상 앞장서서 가는 사람이 형 아니야. 산에 가면 늘 형의 엉덩이만 보고 따라가던 나도 마라톤을 했는데 형이 왜 못해?” “야 산에 가는 것 하고 마라톤하고 갔냐. 산이야 올라가면서 경치도 감상하고, 힘들면 쉬기도 하고, 아무리 많이 걸어도 몇 킬로 밖에 안 되지만 마라톤 하면 42km를 걷는 것도 아니고 쉬지 않고 달리는 건데 마라톤을 산하고 비교하면 안 되지.” “누가 처음부터 42km를 뛰나. 처음에는 10km도 달리고, 다음에는 21km도 달리고 하다 충분히 연습이 되고 자신감이 생기면 42km풀코스마라톤을 하는 거지.” 나는 종선의 10km, 21km라는 말에 귀가 번쩍 열렸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마라톤은 오직 42km풀코스마라톤만 있는지 알고 있었다. 종선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10km라면 이십 오리(4km 십리)에 불과하니 한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저녁에 시간이 나거나 주말이면 전에는 하지 않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괜히 아무런 생각 없이 동네를 걷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의 행동을 운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만의 마라톤의 시작이었다.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감이 생긴 나는 도전에 나서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5km쯤 떨어진 작은집을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군에서 제대한 이후 산에 갈 때 이외에는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본 적이 없었고, 언감생심 작은집을 걸어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몇 날 몇 칠을 벼르다 막상 작은집을 향해 출발했지만 십리가 좀 더 되는 그 길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멀었다. 좀 가다 힘들면 쉬고, 무슨 볼거리라도 있으면 구경을 하면서 쉬엄쉬엄 작은집을 향해 갔다. 어떤 계획을 갖고 작은집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단지 걸어서 작은집을 가는 게 목표였으므로 작은집을 걸어간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다. 오히려 반전은 작은집에 도착해서 발생했다. 집에서부터 걸어서 왔다는 말에 작은아버지와 작은엄마는 깜짝 놀라시며 쓸데없이 왜 걸어왔냐면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힘들지 않았냐고 몇 번을 묻고 다음부터는 걸어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걸어간 내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작은집을 걸어가는 첫걸음을 뛴 다음에는 가끔씩 작은집으로 걸어가거나 반대로 작은집에서 집으로 걸어왔다. 작은집으로 걷기가 반복되면서 작은집으로 걸어가는 방법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몇 번 작은집으로 걷기를 한 다음에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한 번도 안 쉬고 작은집까지 걸어가기였다. 한 번도 안 쉬고 작은집까지 걷기가 가능해지자 단계를 높여서 일정한 속도로 작은집까지 걸어갔다. 그 다음에는 또 단계를 높여서 좀 더 빠르게 걸어가기를 시도했다. 여기까지 가능해지자 은근히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뛰고 싶다는 마음이 온몸으로 빠르게 펴져나갔다. 그러나 마라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에세이] 1부 - 마라톤을 시작하다 1-손목을 자르고 싶었다 2-미쳤구나 미쳤어 3-마라톤, 멀고 먼 길(마라톤 이야기3) 4-뛰고 싶어 하는 마음 5-여우고개를 올라가서 본 것 이재학 작가 마라토너, 소새울 소통미디어 협력단 대표, 부천 소새울에 산다 발행인(전), 복사골문학회, 부천수필, 부천시인 저서 『나는 마라토너다』 『길에서 다시 찾은 행복마라톤』 『황소도 말처럼 뛰나』 『엄마가 치매야』 『소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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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주 칼럼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에 대한 단상"
부천시가 주최하여 시행하는 디아스포라 문학상에 대한 설왕설래가 작금에 이르러 더욱 많아짐을 본다. 혹자는 지금까지 수상한 이들이 외국 작가들이다 보니 쓸데없는 혈세 낭비 잔치라 하고, 또 다른 혹자는 굳이 수상작의 주제를 디아스포라로 한정하여 스스로 문학의 범위를 좁힐 필요가 있느냐고 항변한다. 극단적으로는 5천만 원이라는 상금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부천 문학인을 들쑤셔 폐지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정된 국제문학상은 2011년부터 수상자를 배출한 박경리문학상이다. 이 상은 소설가 박경리의 작가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토지문화재단에서 주관한다. 국내 작가가 2회, 외국 작가가 11회 수상했다. 이러한 국제문학상이 없었다면 2019년 원주가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 상은 탁월한 문학적인 업적을 성취하여 높은 평가와 함께 많은 영향력을 지닌 작가에게 수여된다. 즉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는 상이다. 상금은 1억 5천만 원. 디아스포라는 특정 민족이 자의든 타의든 태어난 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 정착해 형성된 집단을 의미한다.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대표적 사례인데 이는 좁은 의미의 디아스포라이다. 부천시가 디아스포라 문학상을 제정할 때의 의미는 광의(廣義)였다. 부천시 인구 구성을 생각할 때에 토착민의 비율은 극소수에 그칠 것이다. 대부분이 이주민이라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부천 시민 대다수가 디아스포라라는 얘기다. 한발 더 나아가 도시화가 집중된 우리 국민 다수도 디아스포라이며 세계 여러 나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부천시 디아스포라 문학상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생존을 위해, 때로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문구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 밑에는 ‘우리는 모두 디아스포라’라고 되어 있다.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 탄생의 단초가 여기에 있다.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문학상은 세계에서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이 유일하다고 알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존재의 의미가 분명하다고 본다. 장편소설에 주는 국제문학상 후발주자로서 상금 5천만 원도 결코 많은 편이 아니다. 국내 문학상도 5천만 원이 넘는 문학상이 여러 개다.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하였기에 그나마 이 정도 상금만으로 전 세계 소설가들에게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이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이제 겨우 4회를 치러놓고 폐지를 주장한다? 그래서 문학창의도시라는 타이틀을 반납하게 된다면 그 부끄러움은 누구 몫이 될 것인가. 박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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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발간과 출판기념회 소식 - '내 마음의 실루엣'을 출간한 김명숙 시인의 녹슬지 않는 꿈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부천에는 많은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3년 10월 15일 시집 "내 마음의 실루엣" 출판기념회를 겸한 문학강연을 연 김명숙 시인의 녹슬지 않는 꿈을 소개합니다. 김명숙 시인은 전남 고흥 출신으로 제1회 한국아동문학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으며, 2008년 국립국악원 생활음악 「화전놀이」가 공모 당선되었고, 2011년 초등학교 5학년 음악교과서(천재교육)에 「새싹」이 등재되었다. 가곡, 동요 작사가이기도 하며 작품으론 가곡 「달에 잠들다」 외 45곡, 동요 「새싹」 외 80곡이 있다.시집으론『그 여자의 바다』와『내 마음의 실루엣』이 있다. 김명숙 시인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제1회(사)한국아동문학회 신인문학상 수상(동시 등단) ▲초등학교 5학년 음악교과서 "새싹" 저자 ▲작시: 가곡 ‘달에 잠들다’ 외 47곡/ 동요 ‘새싹“ 외 80곡과 제54회, 57회 4.19혁명 기념식 행사곡 "그 날", 제60회 현충일 추념식 추모곡 "영웅의 노래" ▲수상:부천예술상, 한국동요음악대상, 도전한국인대상(문학부분), 문예마을 문학상, 시흥문학상 우수상, 제5회 오늘의 작가상, 방송대문학상 수상 외 다수 ▲부천문인협회,(사)한국아동문학회, 고흥작가회 등 다수의 회에서 활동. ▲현)부천시노인복지관 작문강사, 방과후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명숙 시인 시집 발간과 출판기념회 소식 2023년 10월 15일 오후 3시~5시김명숙 시인의「내 마음의 실루엣」출판기념회 및 문학 강연이 경기도 부천 교보문고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내빈으로 참여한 박노진 교보문고 지점장, 국민 가곡으로 잘 알려져 있는 “얼굴” 작곡가인 신귀복 작곡가, 최숙미 부천문인협회 회장, 조영훈 부천시 원미노인복지관 관장이 덕담과 축하의 말을 전했다. 북 사인회 출판기념회 1부는 문학 강연 및 북 사인회, 2부는 김명숙 시인의 시로 진행하는 시낭송과 시극, 시인이 작사한 가곡, 동요 공연이 있었다. 작가의 말을 겸한 문학강연 <꿈은 녹슬지 않는다.>에서 “어릴 적 꿈이 하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노래하는 가수(성악가), 그리고 잘했던 것은 글쓰기였고 노래 부르기였다.” 고 밝혔다. 역경과 실패를 딛고 일어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노래를 좋아해 성악가가 되고자 했던 꿈은 작사가가 되어 가곡 47곡, 동요 81곡을 지었습니다. 그리하여 노래를 성악가처럼 주업으로 무대에서 부르진 않아도 작사를 하여 음반에 수록되고 제 이름이 기재된 여러 곡이 방송과 무대에서 불러지고 있고 교과서에도 실리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 또한 복지관, 학교 등에서 강사를 하고 있어 흡족 친 않지만 가르친다는 점에서 나름 이뤄졌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시 '고래의 꿈'은 수능 학습 저작물과 강남 인강에 실렸습니다. 그리고 두 권의 시집을 펴내 오늘 여러분 앞에서 출판기념회 및 문학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제 꿈은 녹슬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신귀복 작곡가 꿈은 찾고 두드리는 자에겐 반드시 기회가 온다. 그 기회가 나를 찾아왔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며,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해보고, 꿈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고민해보시기 바란다는 인사 후 북 사인회가 열렸다. 2부 공연엔 시낭송가 민준기, 신영기, 문회숙, 이호봉이 출연해 김명숙 시인의 시(詩) <아리랑>,<밤의 눈>,<가지를 익히며>,<혼자가 아닌 여럿은>을 낭송하였고, 복사골 시낭송 예술단 이현주· 김성숙· 이희· 정나래 시낭송가들이 김명숙 시인의 시 <억새>, <어미>, <엄마바지>, <목욕재계>, <누름돌>을 각각 낭송하고 <고흥 유자차를 마시며>를 시극으로 꾸며 시 퍼포먼스를 선물했다. 신귀복 작곡가의 곡으로 김명숙 시인이 작사한 가곡 “산길에서, 그대 그리워, 어느 날 오후”와 동요 3곡이 있는데 출판기념회에선 “그대 그리워”와 “어느 날 오후”가 각각 연주되었고 소프라노 유미자 성악가의 <그대 그리워>와 <달에 잠들다(이재석 작곡)>, 베이스 이용찬 성악가의 <어느 날 오후>와 <비와 나그네(조원경 작곡)> 열창은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았다. 단체사진 김명숙 시인이 작시한 동요 4곡이 연주되었다. 김종명 작곡가가 작곡한 <새싹>은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린 곡으로 부천상일초 3학년 최영연 학생이, 전준선 작곡의 <빗방울 여행>은 부천상일초 3학년 이지민 학생이, 오세균 작곡의 <통통볼>은 인천청호초 2학년 정다원 학생이, 김춘남 작곡의 <허수아비와 고추 잠자리>는 이지민· 최영연· 정다원 학생의 중창으로 합창해 관객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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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바다는 노을로 말한다 / 황주현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보령 바다는 노을로 말한다 / 황주현 처음 내게, 보령 바다는 말이 없었다. 그 먼 길을 달려와 마주한 보령 바다는 한 자락의 푸른 옷깃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잔잔한 파도가 섬 한 채를 풀었다가 조였다가 그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수평선은 한 줄의 단호한 문장으로 길게 누워 있을 뿐이었다 읽어 낼 수 없는 바다의 안부 말수 적은 아버지 같았다 어둑한 저녁의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와 구석진 마당가에 빈 지게로 우두커니 서서 발 디딜 곳 없는 어둠을 부려 놓곤 했었다 어스름한 저녁의 수평선은 고단한 생의 시작과 끝을 단단하게 결박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무수히 많은 할 말들을 알아챈 건 노을이 물든 서해 바다의 막다른 골목이었다 아버지의 삶도 저토록 붉고 찬란하게 타오르고 싶었을까. 다시 잿빛으로 타다 남은 검붉은 밑불로 남아 세상의 바닥을 단 한 번만이라도 따뜻하게 데우고 싶었을까 아버지의 핏빛 노을은 하늘로 번지고 다시 땅으로 내려와 40년 만에 마주한 중년의 아들에게 불타오르는 노을의 마지막 문장을 건네주고 싶었던 것이다. 해후의 마중물 같은 검붉은 노을의 심장은 뜨거웠다 온몸을 휘감고 도는 바람의 잔등은 차가웠다 거칠고도 짠 아버지의 비릿한 냄새는 노을과 함께 그렇게 바닷속으로 잠잠히 젖어 들어 갔다 보령 바다는 노을로 말한다 한순간 뜨겁게 불살랐으나 어느 순간 차갑게 스러져 간 차마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 대신 읽어주는 한 권의 노을, 보령 바다 황주현 시인, 시낭송가. ----------------------- 시인은 쌀 한 톨에서 나뭇잎 하나, 바람 한 줄기에서 시를 따고 집어 들 듯, 시적 화자는 말 없던 보령 바다가“잔잔한 파도가 섬 한 채를 들었다 조였다가”라고 한다. 그러한 바다에 귀를 기울이다가 “노을이 물든 서해 바다의 막다른 골목이었다”에서 찬란하고 붉게 타오르는 아버지의 삶을 떠올린다. 이 순간 시인의 머릿속의 잠든 초인종을 눌렀던 것은 바로 ‘노을’이었을 것이다. 왜냐면, 마지막 연 첫 행 “보령 바다는 노을로 말한다”와 “차마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 대신 읽어주는/한 권의 노을, 보령 바다”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화자는 노을이라는 심상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한 권의 노을’로 이미지화한다. 그 한 권의 노을이라는 책 속에 아버지의 삶에 대한 추억, 그리움, 기억 등이 페이지마다 구구절절이 노을빛의 붉은 해서체로 때로는 초서체로 적혀 있었을 것이다. 그 보령 바다의 노을, 그 노을을 차마 어찌 한 잔 마시고 싶지 않았겠는가? ‘노을’이라는 실존적 현상에서 아버지에 대한 정체성과 내면성을 들어내면서 “40년 만에 마주한 중년의 아들에게/불타오르는 노을의 마지막 문장을 건네주고 싶었던 것이다”라고 시상을 펼치고 있다. 표층적 심상인 보령의 앞바다에서 심층적 이미지인 노을을 형상화해 아버지를 그리는 것은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 보령 앞바다보다 더 넓고 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인간의 실존적인 삶을 관통하지 않은 문학과 예술은 있을 수 없다. 노을빛 한 줌 한 알을 가슴으로 느끼며 푸른 옷깃의 바다와 노을빛 바다의 대칭적 표현으로 아버지의 삶을 읽어내는 시인의 시혼에 두 손을 잡는다. 그 어떤 문학, 예술작품에서 커다란 울림을 만난다는 것은 속 깊은 가슴 인연이다. 감동을 주는 작품도 때론, 스쳐 지나간 바람에 묻힌 향기처럼 날아가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긴 여운으로 영혼에 스미고 마음의 살갗에 무늬로 박히는 작품이 있다. 「보령 바다는 노을로 말한다」의 시가 그러하다. 그렇다. 햇귀를 맞이하며 해가 떠오르는 아침의 수평선과 벌겋게 물들며 해를 집어넣는 수평선은 시작과 끝의 연속이다. 이러한 수평선에 반해 우리 아버지들의 삶은 시작의 끝에도 끝의 끝에도 오직 자식만 있을 것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식들에게 모든 걸 다 내주고 나면, 아버지는 저토록 서녘의 형형한 노을빛처럼 빛나는 것일까?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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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김석심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삶이란/김석심 앞만 보며 달려왔던 인생이었지 건강과 얽힌 실타래 푸는 동안 서산에 노을은 짙어만 갔네 어느덧 남편은 한줄기 구름과 바람으로 왔다가 떠나가고 아이들은 자라 제 갈 길 찾았으니 허전한 마음에 뒤돌아보니 출발점은 저 멀리서 몸을 숨기고 종점이 가까워질 때 유일한 내 친구는 문학의 길이라네! 알량하게 쓰는 글이지만 글 한 편이 나의 애인이고 자식이고 친구일세! 유통기한이 없는 글을 쓰고 언제까지 정신력 잃지 않은 삶으로 뜨락에서 피어나는 수채화 같았으면. 시·수필집 『인생의 숲을 통해서』, 해드림출판사, 2021 ---------------------------------------------------------- 최근엔 노년의 삶에 대한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에이지즘(ageism)’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즉 노인들을 경원시하고 고립시키면서 차별화하는 의미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러나 건강한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것 못지않게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삶이란> 이라는 시제에서 이미 삶의 연륜이 두터움을 느낄 수 있다. 1연에서의 “앞만 보며 달려왔던 인생이었지//건강과 얽힌 실타래를 푸는 동안”에서 그 어디에도 한눈팔지 않고 오직 가정과 자식들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어느새 “서산에 노을은 짙어만 갔네”라고 한다. 이제야 뒤돌아보니 서녘에 지는 붉은 노을이 보인 것이다. 그 사이 평생지기인 남편은 “바람으로 왔다가 떠나가고”에서 보듯 남편은 이미 이승을 떠나 훗승에 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만나면 헤어지고, 떠나면 반드시 만난다고 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다 화자는 삶의 뒤안길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있다. 3연의 “아이들은 자라 제 갈 길을 찾았으니” , 자식들은 장성해서 이미 부모 곁을 떠나고 없다, 뒤돌아보니 마음이 허전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노년의 삶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고고의 울음을 터뜨렸던 인생의 시작점은 점점 멀어져가고 끝점이 서서히 다가옴을 알 수 있다(“출발점은 저 멀리서 몸을 숨기고//종점은 가까워질 때”) 예로부터 ‘품 안의 자식’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자식과 떨어진 노년의 삶이 결코, 외로워서는 안 되고 또한, 외롭지도 않다. 시인 존던은 “누구도 외딴섬일 수는 없다 No one is an island”라고 했다. 노년의 삶은 세월로 층층이 쌓아 올린 하나의 높은 탑이다. 그 탑에 켜켜이 쌓인 인생의 풍부한 경험과 깊고 높은 역량으로 외딴섬도 아니고 무인도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섬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살아 숨 쉬는 섬이 되기 위해 화자는 “유일한 내 친구는 문학의 길이라네!” 하면서 느낌표까지 달아놓았다. 이렇듯 ‘문학’을 의인화해서 서녘을 물들이는 노을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겨‘애인’,‘자식’, ‘친구’로 삼아 白髮의 길을 걸어간다니 얼마나 멋진 황혼 녘 삶의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 아닌가. 그러면서 “유통기한이 없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한다. 당연히 문학은 무통기한이다. “언제까지 정신력을 잃지 않은”에서 보듯 나이 듦에서 오는 건강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하면서 그래도 “삶의 뜨락에서 피어나는//수채와 같았으면” 하면서 <삶이란>의 시를 아퀴짓고 있다. 분명 화자가 희망하는 삶의 뜨락에는 수채화가 유통기한 없이 꾸준히 피어날 것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나이 듦에서 오는 여러 상황을 이미지화해서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노인들을 경제적 시선의 잣대로 한계치를 바라보는 외눈박이 시선은 던져버려야 한다. 그들 삶의 세월은 수없이 많은 실패와 성공의 갈림길에 섰고, 겪었던 노하우가 있다. 또한, 체험적 요소에서 우러나는 축적된 층층 탑 같은 살아있는 풍부한 연륜 등, 그것은 소중한 자산이다. 쓸데없이 낭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노인 자신도 변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고정불변의 사고방식과 변치 않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장자에서 보듯 스스로 자신의 상喪을 치뤄야 한다(吾喪我) 이분법적인 의식을 버리려면 스스로 의식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의식의 변화 없는 배타적 고정관념은 절대로 변화 없는 그저 평범한 노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옹고집을 버려야 한다. 아래의 시 한 수로 글을 맺고자 한다. 生也一片 浮雲起(생야일편 부운기) 死也一片 浮雲滅(사야일편 부운멸) 浮雲自體 本無實(부운자체 본무실) 生死去來 亦如然(생사거래 역여연)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다. 뜬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는 무상함이니 삶과 죽음의 오고 감이 역시 이와 같도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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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세에 피어난 여드름/조인형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네스코문학창의도시 지정 1주년을 맞은 2018년 10월부터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홍영수 시인의 "부천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73세에 피어난 여드름/조인형 낯선 이국땅 이방인 길 찾듯이 심쿵하며 더듬는 볼살 위 여드름 부대가 떼창 하듯 시끄러워 가만히 들어보니 청춘을 돌려 달라 아우성치는 듯하다 열여덟에 피어난 여드름 자국 위에 황혼에 돋아난 철없는 너를 보며 만추의 울타리에 착각한 덩굴장미 피었다가 서리에 얼어 죽은 최후 생각나 은근슬쩍 겁이 났지만, 그래도 나는 청춘이란 착각에 여드름 짜면서 즐기고 있구 인생이란 덧없이 흘러가는 강줄기 위 삶이란 배를 띄워 노 저으며 73세 황혼 녘 남모르게 여드름 만지며 미소 감추네 시집 『73세의 여드름』, 도서출판 글벗, 2022. 시집을 구입할 때 특히 제목이 눈에 띄는 경우가 있다. 물론 시집 내용을 보거나 미리 준비한 시집을 사지만, 제목이 눈에 띄면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요즘은 출판되자마자 대부분의 책들이 사장된다. 온 정성 쏟아 각고의 노력 끝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인데 그러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집의 제목은 시집의 맛을 느끼게 하는 키워드이다. 그래서 저자의 고심이 깊숙이 배어 있다. 왜냐면, 요즘처럼 독서 하지 않는 현실 속에 독특하고 눈에 띄는 인상적인 제목이어야만 독자들의 시선을 강렬하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집의 내용이나 제목에 함축된 특별한 그 무엇(something special)에 관심을 둔다. ‘73세에 피어난 여드름’은 시집 제목의『73세의 여드름』의 표제시다. ‘여드름’은 청춘의 심볼이다. 그 청춘의 상징인 ‘여드름’을 의인화했다. 그래서 1연의“여드름 부대가 떼창 하듯”, 2연의 “청춘을 돌려 달라//아우성치는 듯하다”처럼 73세, 늘그막의 얼굴에서 여드름이 떼창하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이처럼 화자는 여드름을 의인화시킨 다음 거기에 청각적 이미지로‘여드름’을 형상화했다. “열여덟에 피어난//여드름 자국 위에//황혼에 돋아난 철없는 너를 보며”라고 한다. 어쩜 화자는 얼굴의 여드름이 생긴 것을 보고‘회춘(回春)’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비록 고희(古稀)의 나이지만, 신체적인 연륜을 떠나 젊음의 표상인 여드름에서 그 옛날의 젊음을 상기하며 정신적인 이팔청춘으로 승화시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때론, 나이가 들면 특별할 것 없는 것에서도 애착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이 무상한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이 믿을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리라. “만추의 울타리에//착각한 덩굴장미//피었다가 서리에 //얼어 죽은 최후 생각나//은근슬쩍 겁이 났지만” 이렇듯 늦가을 울타리에서 피었다가 때가 되어 사라지는 덩굴장미를 떠올리면서 “그래도 나는 청춘이란 착각에//여드름 짜면서 즐기고 있구”라고 한다. 이렇듯 시인에게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고정관념과 자동화된 시선은 버려야 한다. 타성에 젖은 익숙한 질문이 아닌 보다 의미심장한 물음표를 가지고 경생상외(境生象外) 즉, 깊은 뜻이 형상 너머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 4연의 마지막 두 행을 보자“73세 황혼 녘 남모르게//여드름 만지며 미소 감추네”라고 한다. 화자와 비슷한 나이라면 어쩜 이 시구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지 않을까. 덧없이 지나가는 게 인생살이다. 칠순의 황혼 녘, 술잔에 노을 한 잔 따라 마시고 싶은 시간이다. 늙어가는 것이 아닌, 아름답게 물들어야 한다. 늘그막의 여드름은 창피한 일이 아니다. 층층이 쌓인 세월의 퇴적층에서도 꽃과 나무가 피고 자라듯, 김시습의 시구처럼 “老木開花心不老(노목개화심불로 : 늙은 나무에 꽃이 피니 그 마음 늙지 않았네)”처럼 얼굴의 여드름은 젊디젊은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라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리고 무료한 나날에 잠들지 말고 눈을 불끈 뜨고 참나를 찾으라는 죽비인 것이다. 시인은 밤낮 가림없이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왜냐면, 인간에게 주어진 자잘한 씨앗의 시간들은 바람에 실려 날아가기 때문이다. 삶이 힘들고 아플 때 우린 그것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고, 때로는 하소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한 편의 시가 필요하지 않을까. 행과 연(聯)갈이가 다소 변칙적인 시이지만, 칠순의 시 한 수 읊조리며 조조의 아들 조식의 시 한 수 시인에게 올리고 싶다. 인생은 하루를 더 살아도 아쉽고 하루를 덜 살아도 충분하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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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기/안금자
-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학창의 도시 지정 1주년을 맞아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독자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기울기 안금자 기운다는 건 팽팽함을 내려놓는다는 것 꼿꼿하던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본다는 것 뜨거운 가슴을 서서히 식히며 서쪽으로 기우는 해처럼 지나간 시간 쪽으로 한껏 기울어 비로소 너를 온전히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 어느덧 가을이 가고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이렇듯 계절의 변화란 지구의 23.5도 기운 삐딱함 때문이다. 천동설을 주장했던 프톨레마이오스적 사고를 벗어난 코페르니쿠스, 그의 발상의 전환에 의해 지동설이 나왔고 이는 시야를 달리한 결과물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자 슈클로프스키는 ‘낯설게 하기(makes strange)’란 ‘거꾸로 보기’,‘삐딱하게 보기’라고 했다. 결국 예술의 기법이란 대상을 낯설게 하는 것이리라. 시인은 지금 우물 밖을 보려면 우물이라는 틀의 시각을 벗어나야 볼 수 있듯이(井座之蛙) 인습적인 사고와 가치체계, 고착되고 편협한 시야의 각도를 확 벗어 던지고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자기중심의 自我主義의적 관점을 접어두고 無我主義적인 더 넓은 시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뜨거움을 식히며 사계절을 토해내는 지구 기울기를 보며. 그렇다, 어린애들이 아버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고개를 밑으로 숙여 세상을 거꾸로 보는 것처럼 시인은 수평적(팽팽함)이고 수직적(꼿꼿함)인 시각을 내려놓고 고개 숙여 바닥을 들여다보며 또 다른 세계를 보고 있다. 시인이란 시선의 탈바꿈으로 낯선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동다송의 초의 선사가 일지암을 짓고 읊은 시에서‘눈 앞을 가린 꽃가지를 잘라버리니/석양 하늘 멋진 산이 또렷이 눈에 드네.(眼花枝?却了/好山仍在夕陽天)’라고 했다. 기울어짐과 삐딱함, 낯설게 보기의 시각은 결국 넓은 시야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시인은 평소 바라보는 시야의 한계를 벗어나 상하좌우의 각을 넓히면서 놓친 알짬의 관점을 걸터듬질하며 온전한 그리움의 본질에 다가서고 있다. 서정주가 <화사(花蛇)>에서 징그러운 뱀을‘꽃대님보다 아름답다’고 했듯이. 팽팽함을 느슨하게, 꼿꼿함을 구부림의 시선으로 환기해 보자. 詩仙 두보는 술잔에서 달을 건져 올리고, 酩酊 40년의 수주도, 三酷好 이규보도 취한 도수만큼 멋진 시를 쓰지 않았던가. 보들레르는 “한 편의 시는 무엇인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 자체가 그 무엇인가다.”고 했다. 현실과 시의 세계에 시인은 살고 있다. 시인이 쓴 시는 시인을 떠나 독자의 세계로 가버리고 시인은 현실에 남는다. 창작된 시는 현실 세계로 들어가 스스로 ’공명‘, 아님 ’수축‘ 될 것이다. 열린 시각엔 다른 풍경이 보이지만 닫힌 시각엔 보인 풍경만이 보인다. 다르게 보인 풍경은 독자의 심연에‘공명’의 맥놀이 현상으로 다가오리라. 난, 몇 도의 각도로 기울고 있으며 몇 도의 알코올로 취하고 있는 것일까. 시인 홍영수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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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끄러미/박수호
- ♣ 2017년 10월 부천시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유네스코 문학창의 도시로 지정되었습니다. 문학창의 도시 지정 1주년을 맞아 <부천 시티저널>에서는 부천 문인들 문학의 향기를 독자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물끄러미 박수호 이 가을 물가에 늦은 수련 한 송이 그 옆 빈 배 누굴 기다리고 있을까. 晩秋의 계절, 滿山紅葉에 두리번거리는 낭만객의 시선이 아닌 제목이 말해주듯 얼혼이 흔들리는 현실을 초탈한 시선으로 오감의 솜털을 세워 시인은 물끄러미 강가를 바라보고 있다. 강가에는 7~8월에 피어 이미 시들었을, 그렇지만 무슨 연유로 수련 한 송이는 가을 찬 이슬 감겨든 자세로 피어있을까. 꽃말처럼 ‘당신의 사랑은 알 수 없습니다.’의 뜻을 새기고 있는 것일까. 늦가을 차가운 서리에 꽃잎을 여는 수련 한 송이에서 가슴에 고요의 울림으로 다가선 물음표를 매단 시인의 視. 다소 禪적이고 하이쿠 같은 시다. 소멸의 계절, 늦가을의 스산함과 누굴 위해서가 아닌 무념무상의 자태로 강가에 홀로 핀 수련, 또한 그 곁에는 詩眼이라 할 수 있는 한 척의 빈 배(虛舟)라니, 절묘한 분위기와 언어의 배열 속에 독자의 상상력을 소환하면서 시인은 결국 하고픈 말을 한다. 빈 배는‘누굴 기다리고 있을까’ 시인은 허난설헌이 ‘採蓮曲’에서 읊조렸듯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어두고(花 深 處 繫 蘭 舟)‘ 연인을 기다리는 풍경으로 보았을까. 아님, 누굴 기다리고 있는 빈 배가 아닌 이미 강을 건너고 난 뒤 과감히 버린 배를 가리키는 패러독스가 아닐까.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라는 부처의 말처럼 참나로 거듭나기 위해 그 어떤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얽매임에서 벗어나야 하는 진리 앞에서 빈 배에 시선이 얹혔을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욕망이 욕망을 낳은 속세의 질병들을 망각하고파 레테의 강을 이미 건너가지는 않았을까. 시를 읽는 독자는 자신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한 송이의 꽃 앞에서, 마음속에 매어둔 빈 배에 스며든 시혼 앞에 언제든 떨 준비가 되어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시를 읽는 독자는 행복하다 글/시인 홍영수 jisr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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