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미 단편소설 연재 "달빛 키스"(2)
정주가 한동안 나를 못 본척했다. 나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요즘 예뻐졌다며 무슨 좋은 일 있느냐고 물었다. 뜨끔하기는 했어도 대꾸하지 않았다. 사실은 눈만 뜨면 키스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설레었다. 사진이라도 있으면 닳도록 꺼내 볼 것만 같았다. 몇 주가 지나고, 지난번에는 미안했다며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했다. 혹시 걔를 만날 수 있으려나. 못 이긴 척 따라갔다.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적막했다. 팔손이나무 사이로 보이는 거실 유리창 앞엔 키 큰 국화 화분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정주는 두리번거리는 나를 끌고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사 들고 간 떡볶이를 먹었다. 자기 집은 학교에서 멀어 여기서 산다고. 나는 학교와 가까워 연보라색 통학버스가 타고 싶었건만. 이곳은 자기 엄마가 아는 일본인 회사 간부 집이라고. 빈방이 있다며 와서 살라고 했단다. 남학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주인아주머니는 차갑고 말이 없어 눈치를 보게 된다고. 언니 같긴 해도 말 없는 정주가 아니었다. 주인아주머니 눈치를 본다는 말에 갑자기 친숙해졌다. 나는 본 적도 없는 주인아주머니 험담을 늘어놨다. 정주는 수다도 떨 줄 아냐며 웃어 재꼈다.
수업이 끝나면 둘이서 미술실로 가는 연못가에서 놀았다. 돌 틈엔 붓꽃이 피고 졌다. 정주는 팝송을 곧잘 했다. crazy love를 소리 낮춰 부르다가 멍하게 앉아 있기도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묻기도 뭣해서 말없이 헤어지곤 했다. 가끔 내 가방을 뒤져 친구에게 쓴 편지를 읽어보았다고 했다. 내가 무슨 연애편지라도 쓴 줄 알았는지. 싸울 듯 덤볐으나, 상대를 해주지 않고 눈만 찡긋하고는 넘어갔다. 함께 울어도 서로 다른 이유로 울었다. 정주는 내 속은 빤히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감춰 친구 같지 않은 때도 많았다. 어떨 땐 나를 떼어 놓고 미술실엘 갔다.
“너는 왜 미술실에 자주 가니?”
“숙제가 잘 안돼서.”
미술 숙제는 늘 골치였다. 넥타이나 양말을 그려오라거나 비누로 조각을 만들어오라거나 했다. 미술 시간에는 작품 품평을 했기에 숙제는 평소에 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나랑 같이 가야 하는 게 아닐까? 미술실을 들락거리는 정주가 부럽기는 해도, 무턱대고 따라가는 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미술 선생님은 키도 크고 배우처럼 잘 생겨서 여학생들이 까무러칠 듯 좋아했다. 정주도 분명 그러리라 짐작했다. 키스도 못해 볼 거면서 들락거리기만 하면 뭐해? 입을 삐죽거리며 돌아섰다. 내 속에는 달빛이 황홀한 밤바다를 보며, 낯선 남학생과 나눈 달빛 키스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으니까.
산복도로에서 숨이 멎을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걔와 비슷한 남학생이 여학생 손을 잡고 올라오고 있었다. 해그림자에 선명치는 않았으나, 사각턱이 단정한 게 걔였다. 어디로 숨어버리고 싶은데 그럴 곳이 없었다. 서너 걸음 앞에서 눈이 마주쳤다. 걔가 여학생 손을 놔버렸다. 여학생이 왜냐고 짜증을 냈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으나 분명 알았다. 걔도 나를 알아보았고, 그날 밤이 떠올랐다는 것을. 여학생의 손을 놔버려야 할 만큼 황홀한 키스였다는 것을. 나는 배시시 웃었다. 왠지 그 여학생과 겨뤄 이긴 것 같았다. 달빛 키스는 안 해봤으리라는 막연한 우월감이었다. 비록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았으나, 걔의 착한 눈빛은 나를 안심시키기에 충분했다.
종종 정주네로 갔다. 그날 밤도 핫도그 두 개를 사 들고 케첩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나무계단에 올라서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달이 없어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방문 앞에서 정주를 불렀다. 불빛은 새어 나오는데 인기척이 없었다. 방문을 열었다. 두 물체가 후다닥 떨어졌다. 정주와 걔였다. 정주는 천천히 셔츠를 내려 탱탱한 가슴을 덮었고, 걔는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정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얼얼하게 돌아섰다. 좁은 마루가 천리만리 길었다. 속이 메슥거려 겨우 정원으로 내려섰다. 들고 있던 핫도그를 팔손이나무에 던져 버렸다.
집으로 가지 못하고 거리를 헤맸다. 정주의 탱탱한 가슴이 코앞에서 어른거렸다. 정주 가슴에서 얼굴을 빼던 걔의 당황한 눈빛은 보지 말았어야 했다. 상기된 얼굴에 벌어진 입술까지. 나와 키스했던 그 촉촉한 입술이. 그들의 짓거리에 고통은 왜 내 몫이 되는 건지. 한숨을 내쉬며 앞섶을 쓸어내렸다. 작은 가슴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모멸감에 자존심이 더 상했다.
저들은 언제부터 사귀었을까. 달빛 키스 전이라면? 정주가 우리의 사건을 알까. 일부러 둘 사이를 알게 하려고 인기척을 못 들은 척했을까. 걔도 못 들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정주의 탱탱한 가슴에 묻혔으니 귀가 열릴 리 없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나는 왜 그들에게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지. 가당치도 않은 배신감까지. 언제 걔와 말을 터보기를 했나. 그 흔한 쪽지 한번 주고받길 했나.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걔가 있었던 것일까. 울컥 울음이 차올랐다. 사랑했던 남자에게서 냉대당한 것처럼. 낭만적인 키스가 더럽혀지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채를 흔들어 그들의 영상을 떨쳐내려 했으나, 늦은 밤까지 골목만 헤매게 했다.
정주를 피했다. 저도 피하는 나를 그냥 뒀다. 겨울방학이 되고 연탄 방에 배를 붙이고 있는데 정주가 왔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어지럽다며 한 시간만 쉬었다 가겠다고. 거절하기도 뭣해서 틈을 두고 누웠다. 정주가 자꾸만 뒤챘다. 어디가 아프긴 한 모양이나 묻지 않았다.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가겠다고 했다. 정주가 가고 화장실에 갔더니 큰 패드가 떨어져 있었다. 칠칠찮게 생리대를 떨어뜨리고 그랬을까. 왜 어지럽다고 했지? 평소에 덜렁대지도 않는데 웬일이지? 더 이상의 상상은 ‘설마’라는 단어로 막아버렸다.
여고 졸업식 날,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한껏 졸업을 즐기고 있었다. 어떤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멀찍이 정주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도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막혀서.
그날 밤에 정주가 왔다. 나도 그동안의 불편한 관계를 털어내야만 할 것 같았다. 정주가 이불속으로 발을 뻗으며 소문내지 않아서 고마웠다고 했다.
“무슨 소문?”
“나도 소문내지 않았어.”
정주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머리에 피가 다 말라버리는 것 같았다. 설마, 달빛 키스를 알고 있나?. 걔가 말해 버렸을까? 그런 건 무조건 비밀이지 않나. 노련한 정주 꾐에 넘어갔을 수도 있겠다. 멍청이 같으니.
원망과 방어가 팽팽해졌다.
“그날 밤 키스는 어땠어?”
“무슨 말이야?”
“봤어. 나갔다 들어오는데 그러고 있더라.”
“팔손이나무 뒤를 스치던 이가 너였니?
“응.”
“그 순간은 건드리지 마!”
정주가 예상했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내가 방문 앞에서 불렀을 때 왜 대답 안 했냐고 물었더니 재밌을 것 같아서란다. 나는 그게 나한테 할 짓이냐고, 음흉스럽고 무서운 애라고 쏘아붙였다. 인생 다 산 사람처럼 한숨을 푹 내쉬더니 대사를 외듯 말을 이었다.
“달이 밝은 날을 기다렸어. 걔를 불러들이고 니들이 섰던 자리에 나란히 섰지. 내게 키스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러지 않더라. 내가 먼저 시도했어. 피하는 거야. 모멸감에 미칠 것 같았어. 왜 그랬을 것 같니?”
“내가 알 게 뭐야.”
“니들의 감정을 느끼고 싶었어. 아니 빼앗고 싶었어. 아니 뺏어야만 했어. 나는 걔를 너보다 먼저 알았고 서로 사랑했으니까. 근데 그 순간을 피하는 거야. 뺨이라도 때리고 싶었어. 왜 걔하고는 되고 나하고는 안 되느냐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냐고 소리 지르고 싶었어. 근데 말이야. 니들의 키스를 내 입으로 말하기는 정말 싫더라. 초라해질 나를 감당할 수 없었거든.”
“그런 얘기를 왜 해?”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눈을 내리깔더니 말투가 슬퍼졌다.
“걔가 계단을 내려가 버렸어. 나는 걔를 알고 처음으로 울었어. 질투에 울었던 거지. 그 순간은 건드리지 말라는 네 말과 걔의 태도가 맞아떨어지지 않니? 말하는 이 순간도 기분이 별로다.”
“......”
”진심으로 어떤 감정인지 알고 싶었어. 말해줄래?“
“그만해라.”
“질투 해봤니? 미치도록. 내 감정이 그랬어.”
“내가 걔를 뺏은 것도 아닌데. 왜 이래?”
“니들의 관계를 넘어서야만 그 사랑이 온전해질 것 같았어. 내 영혼이 걔 영혼과 합치기를 원했거든.”
정주가 나를 시험하듯 빤히 쳐다봤다. 내 속을 파헤쳐 그때의 감정을 뽑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까만 눈동자에 어리는 뭔가에 움찔했다. 질투인지, 미움인지 분노인지. 그 순간이 너무 길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밀려 중얼거렸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게.”
정주가 까르르 웃었다. 종잡을 수 없는 건 여전했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정말 미안했다고. 질투는 했어도, 나를 미워하지는 않았단다. 유일한 친구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고. 친구이긴 한 건지.
“듣기 싫어.”
“그날 너 오기 전엔 얘기만 하고 있었어. 마루 걷는 소리가 너 같더라고. 네가 문 여는 동시에 셔츠를 올리고 걔를 끌어당겨 내 가슴에 묻어버렸지.”
“미쳤어. 미쳤어.”
“나는 질투로 미쳐 있었어. 걔가 그 순간을 침범치 못하게 하는 태도 때문에.”
“나보라고 그런 짓을 해?”
“그래서 지금 사과하잖아.”
“너 소문이란 게 뭐야?”
“임신했었어.”
거침없는 정주로 인해 내 인생에 ‘설마’ 하나가 사람을 잡고 말았다. 나는 아직도 ‘설마’에 위안을 삼고 살지만, 그날의 ‘설마’는 세상 모든 신뢰를 내동댕이쳤다. 학생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대들었다. 정주는 폭우 같은 사랑 앞에 학생은 비닐우산 같았다고. 내가 낯선 남학생과 키스한 게 더 황당하단다. 할 말이 없었다. 누구와 사귀어본 적도 없는 나는 달빛 키스만이 낭만 1순위였건만.
“걔가 혹시 너한테 온 적은 없니?”
이건 또 무슨 저격인지. 나는 펄쩍 뛰었다.
“나는 걔 이름도 몰라. 우리 집은 더더욱 모르고. 그 순간일 뿐이야. 바람둥인가 보네. 언젠가 여학생이랑 손잡고 오는 걸 산복도로에서 봤거든. 너랑 사귀면서도 그런 거겠지? 착한 얼굴로 여러 여자 울리나 보네. 나쁜 자식.”
“애는 착한데 연애를 즐겨.”
“그러니까 나쁜 자식이지.”
“내가 그 여자애랑 찢어놨어.”
“대단들 하다.”
정주가 헛헛하게 웃었다. 그녀의 자괴감 드는 사랑 타령을 더 듣고 있다간, 속없는 내가 위로라도 할 것 같아 밖으로 나와버렸다. 30분이 지나도록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피장파장 서로 소문내지 않았으면 된 거지. 걔는 연애 즐기느라 나와 달빛 키스를 한 거로군. 내게는 빛나는 보석인데. 골목을 내려가는 정주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큰 키에 청바지 입은 엉덩이가 볼록하고 탄탄했다. 정주의 성숙한 몸매는 깡마르고 밋밋한 내 몸을 언제나 초라하게 만들었다. 질투 나는 몸매로 잘생긴 걔를 가졌으면 된 거지. 나의 짧은 낭만까지도 뺏으려 들다니. 못된 계집애.
나는 지방 대학 국문과에 들어갔고, 정주는 재수학원 다닐 거라며 서울로 갔다. 걔가 서울 명문대에 합격했다더니 따라간 것 같았다. 나는 미팅도 하고 퇴짜를 놓고 퇴짜도 맞으면서 대학 생활을 즐겼다. 4학년이 되면서 소설로 문예지에 당선이 됐다. 소설 「달빛 키스」로 연인들의 낭만을 부추기며, 연애 소설 쓰는 재미에 빠졌다. 가끔 정주가 궁금하기는 했으나, 달빛 키스로 밀어내 버리곤 했다. 과에서 선망의 대상이 된 나는 글쓰기 동아리 리더를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그 남자를 다방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정주가 스님이 되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날이 갈수록 정주 인생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택한 길이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그런데도 마음이 혼란스럽고 글도 써지지 않았다. 정주를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정연사 돌계단에 걸터앉았다. 여기까지 오긴 해도 승복을 입은 그녀를 마주 볼 일이 막막했다. 스님이 된 정주는 속세를 다 잊었을까. 사랑도 우정도. 절 마당에 올라서니 여승이 다가와 합장을 했다. 여고 때 정주 사진을 보여주며 스님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여승은 나를 작은 암자로 안내했다. 십 분쯤 지나니 누군가 다가왔다. 방안 문고리를 잡고 잠깐 눈을 감았다가 문을 열었다. 여느 여승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의 정주였다. 표정이 맑고 편안해 보이는데 나는 목이 메었다. 질투 많고 거침없던 정주 같지 않았다, 예쁜 콧날을 찡그리며 웃었다. 이름을 부르질 못해 머뭇거렸다. 그녀가 칸츄리! 하며 내 손을 잡았다. 진땀이 났다. 어떻게 우리 둘 사이에 이런 만남이 있을 수 있을까.
“말 놔도 되는지.”
“그럼 친군데.”
“왜 이런 모습이야?”
눈물이 괴고 말았다. 그녀도 눈자위가 발그레해졌다. 나는 눈물을 훔쳐 가며 따지듯이 물었다.
“네가 이럴 이유가 뭐였는지 말해 봐.”
“배고프지? 국수부터 먹자.”
(계속)

작가 최숙미


